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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현 빙의글 #1

salvation 2017. 7. 5. 15:46








민현은 셔츠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는 습관이 있다. 그 모습이 꽤나 금욕적이라 정인은 문제에 집중할 수가 없다.


"빨리 풀어."


가라앉은 미성이었다. 정인은 귓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곧게 뻗은 민현의 손가락이 책장 모서리를 두드린다. 두드리는 소리가 일정하다. 반비례적으로 정인의 심장 소리는 빨라진다. 무의식적으로 저 하얀 손가락이 자신을 더듬는 상상을 한다. 죄책감이 밀려와 정인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민현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민현의 손가락이 움직임을 멈춘다. 정적이었다. 정인은 호흡을 가다듬는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정인은 민현을 생각할 때마다 갈증이 일어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




민현이 정인의 과외를 맡게 된 지 한 달 정도 지났다. 과외 첫 날, 정인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잘생긴 대학생에게 반해버렸다. 훤칠한 키에 화려한 듯 단정한 얼굴이 딱 자신의 취향이었다. 또한 민현의 설명은 깔끔해서 알아 듣기 쉬웠다. 그렇게 정인은 매일매일 민현이 찾아오는 시간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요즘 정인은 민현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미칠 지경이다. 시계의 긴바늘이 12를 향한다. 민현이 올 시간이다. 정인은 벌써부터 안절부절못하는 자신 때문에 한숨이 나온다.

​​​민현은 선정적이다. 그 사실이 정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자신의 위에서 짙은 숨을 뱉는 민현과, 덜컹거리는 침대 스프링 소리를, 자꾸 상상하게 된다. 정인은 그런 자신이 싫어진다.

그렇다고 정인이 원래 이성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일찌감치 성에 눈을 뜬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정인은 현재 자신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자가진단했다. 상상 속의 민현과 현실 속의 민현을 비교하자 그 괴리감이 극도로 이질적이었다. 정인은 죄책감으로 가득 찬 머리를 꾹꾹 누른다.

.
.
.

초인종 소리가 들리고 정인은 문을 열어 민현을 맞이한다. 민현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긴다.

"숙제했지?"

"네."

"잘했네."

자신을 향해 싱긋 웃어주는 민현과 눈이 마주친 정인은 급하게 고개를 숙인다. 민현이 자연스럽게 정인의 옆자리에 앉는다. 순간 훅 끼쳐 들어오는 민현의 체향에 정인은 어지러워진다. 정인은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긴다.

"오늘 덥다. 그치?"

정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방금 들어온 민현 주위의 공기가 아직도 후덥지근하다. 민현이 천천히 셔츠의 맨 윗단추를 푸르기 시작한다. 민현의 손가락에 고정되어 있던 정인의 시선이 옮겨진다. 꽉 조이는 구멍 때문에 단추가 잘 빠지지 않는지 민현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정인과 민현의 시선이 마주친다. 그 짧은 찰나에 많은 감정이 오갔다. 정인을 바라보는 민현의 눈빛이 올곧다. 정인은 그 눈빛에 타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실없는 생각을 한다.


"정인이가, 평소엔 내 손만 닿아도 진저리치길래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

"이럴 때 보면 날 되게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네?"

"넌 어떻게 생각해?"


장난스럽게 묻는 말의 농도가 짙다는 건 정인의 착각일까. 정인은 애써 고개를 저으며 웃는다.


"저 물 떠올게요."


민현은 벌떡 일어나는 정인을 잡지 않는다.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서는 정인의 얼굴이 빨갛다. 정적 속에서 컵에 담기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정인이 물컵 두 잔을 들고 방으로 돌아온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민현이 컵을 들어 물을 마신다. 시선은 정인을 향하고 있다. 민현의 목울대가 일렁거린다. 울렁이는 목젖을 보고 있으니 정인은 나쁜 생각을 하게 될 것만 같았다. 민현의 눈빛이 나른하다. 민현이 물을 마시는 소리와 정인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너도 너가 귀여운 거 알지?"

"네? 무슨..."

"너는 무슨 생각하는지 겉으로 다 티가 나."

"...아니예요,"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혼자 끙끙거리는 것도 귀엽긴 한데, 나 이제 좀 답답해지려고 하거든."


민현은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정인은 손에 쥔 샤프를 꽉 잡는다. 머릿속에선 이미 자신과 민현이 반나체로 뒹굴고 있었다. 정인이 입술을 깨문다. 민현은 늘 이런 식으로 정인을 당황하게 하곤 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선을 넘은 적은 없었다.

민현의 눈에도 항상 욕정이 일어 있다는 것을 정인은 모르지 않았다. 그것은 정인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정인은 둘의 관계가 파멸로 치닫게 될까 봐 두려워서 그동안 참아왔다.

민현의 풀린 단추, 하얀 목덜미를 타고 내려오면 셔츠 사이로 살짝씩 드러나는 쇄골을 보니 정인은 몸이 달았다. 민현이 혀를 내어 아랫입술을 훑는다. 정인은 술 한잔 마시지 않았는데도 취한 기분이 들었다. 민현의 분위기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


"말하면 들어주실 거예요?"

"뭔지 들어보고."

"선생님,"

"...."

"그럼 오늘 공부 말고 다른거 가르쳐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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